불기둥 크레센츠: 마비노기 개발진의 데뷔작
1996년 발매된 횡스크롤 액션 게임. 마비노기의 아버지 김동건(나크)과 이은석(파파랑)의 대학 시절 데뷔작으로, 욕설 이스터 에그로 전량 리콜된 전설적인 에피소드를 남겼다. 삼성전자가 게임 퍼블리싱을 하던 시절의 산물.
마비노기, 마비노기 영웅전으로 유명한 데브캣 스튜디오. 그 핵심 멤버들이 대학 시절 함께 만든 첫 상용 게임이 바로 '불기둥 크레센츠'다. 1996년 S&T 온라인에서 제작하고 삼성전자가 배급한 이 SF 액션 게임은, 지금은 생소하지만 삼성전자가 게임 퍼블리싱 사업을 하던 시절의 산물이다. 삼성 컴퓨터를 구매하면 비매품으로 증정되기도 했던 이 게임은, 기술적으로 뛰어났지만 예상치 못한 이스터 에그로 전량 리콜되는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개발 배경
불기둥 크레센츠는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출신의 김동건(나크)과 이은석(파파랑)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다. 둘 다 프로그래밍이 아닌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게임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산업디자인을 택한 '괴짜'들이었다.
김동건은 이 게임에서 기획, 프로그래밍, 캐릭터 그래픽, 메카닉 그래픽, 배경 그래픽, 효과음 합성까지 약 2000여 시간을 들여 혼자서 전체 게임의 절반 이상을 만들었다. 심지어 여성형 몹이 죽을 때 내는 요상한 소리조차 본인이 직접 녹음했다고 한다.
게임의 특징
불기둥 크레센츠는 록맨을 연상시키는 횡스크롤 액션 게임으로, 당시 PC에서 혁신적이었던 60 프레임과 상하좌우 고속 스크롤을 지원해 액션성이 상당했다.
2095년, AI가 인류를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AI와 디스토피아라는 소재를 다루며, 주인공 서린이 '불기둥'이라는 별명의 프로토타입 아스카(Astro Counter)를 조종해 싸워나가는 암울하면서도 매력적인 스토리가 특징이다.
CD-ROM으로 구동되는 게임으로, 당시로서는 드문 형태였다. 높은 난도와 B급 감성의 유머가 곳곳에 숨어 있어 나름의 매니아층을 확보하며 인기를 끌었다.
전설의 리콜 사건
불기둥 크레센츠가 게임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리콜' 때문이다. 게임 중 CD롬을 열면 "드라이버 닫아 XX야!"라는 욕설이 김동건 본인의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이스터 에그가 있었는데, 이것이 수정되지 않은 채 발매되어 전량 리콜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욕설은 원래 개발 과정에서 김동건이 이은석을 놀래주기 위해 만든 장난이었다. 당시에는 '웃픈' 사건이었지만, 지금은 한국 게임 역사의 전설적인 에피소드로 회자된다.
숨겨진 이스터 에그들
리콜의 원인이 된 욕설 외에도 다양한 이스터 에그가 숨겨져 있었다.
정품 CD를 넣지 않고 실행하면 첫 번째 보스전에서 "보스는 정품 시디에 있다. 감히 크레센츠를 크랙하다니.."라는 대사와 함께 게임을 진행할 수 없었다. 또한 특정 스테이지에서 까마귀를 모두 죽이면 "까마귀를 죽이다니! 천벌을 받을 지어다!"라는 대사와 함께 이후 데미지를 받을 때마다 엄청난 피가 쏟아지는 페널티가 있었다.
비밀 스테이지로 가면 '팔오되었수다'라는 아마추어 게임이 배경으로 등장하며, 제작자인 이상석, 김동건, 이은석이 차례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후의 발자취
불기둥 크레센츠 이후 김동건 패밀리는 '85되었수다(1997)', '삭제되었수다(1998)', '가이스터즈(1998)', '아이스키스(1998)' 등의 게임을 내놓으며 한국 패키지 게임 시대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이은석(파파랑)과 동료 이원은 손노리에서 '화이트데이'를 개발했고, 이후 넥슨에 합류해 김동건과 재회한다. 2000년 넥슨에 입사한 김동건은 2004년 '마비노기'를 출시하며 대성공을 거두고, 이은석은 '마비노기 영웅전'을 디렉팅해 2010년 대한민국게임대상 대상을 수상한다.
마치며
전량 리콜이라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남겼지만, 불기둥 크레센츠의 작은 성공은 마비노기라는 거대한 IP의 씨앗이 되었다. 그 씨앗은 30년 가까운 세월을 지나 2025년 마비노기 모바일로 꽃피우며, 지금도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